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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총사업비 1조5183억원을 10년 넘게 투입해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구축한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내년도 연구개발(R&D)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행 R&D 예산을 전액 삭감한 뒤, 정작 연구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현물로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R&D 현물지원’이라는 방식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입장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20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와 한국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과기정통부는 내년도 중이온가속기 선행 R&D 예산 51억1000만원 전액 삭감을 결정했다.
중이온가속기는 입자를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충돌시켜 깨뜨린 뒤 세상에 없는 원소를 찾아내는 초대형 설비다. 라온은 부지면적만 95만2000㎡(축구장 약 137개 너비)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가 노벨상으로 이어진 사례는 30건이 넘는다. 현대 물리학 연구의 핵심이다.
현재 라온은 저에너지출력구간 설비 구축(1차 사업)을 완료하고, 고에너지출력구간 설비 구축(2차 사업)을 앞두고 있다.
2차 사업에 앞서 내년에는 핵심 장치인 고에너지 초전도가속관(SSR·사진) 제작 관련 선행 R&D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과기정통부는 갑작스러운 R&D 예산 삭감으로 가속관 제작에 차질이 예상되자, 핵심 원·부자재를 직접 현물로 공급하라는 계획을 세워 라온 측에 전달했다.
1차 사업 이후 라온 창고 등에 보관 중인 희토류 금속 나이오븀 250㎏과 가속관 금형, 액체헬륨 등이 과기정통부가 말하는 현물이다.
조만간 공고를 통해 선정할 예정인 가속관 제작 기업에게 라온이 해당 원·부자재를 현물로 제공하고, 기업에서 인건비 등 자체 비용을 들여 가속관을 제작하면, 내후년에 정부가 투입 비용을 사후 정산해 주겠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조성 추진단 측은 “정부가 관급자재를 구매한 뒤 사업자에게 의뢰해 설비를 구축하는 사례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한다. 중이온가속기 구축 사업에 참여한 중견 과학자 A씨는 “내년 예산도 갑자기 삭감된 상황에서 창고에 있던 원·부자재를 가져다 쓰라는 것이 과연 현물지원이라고 볼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욱이 R&D를 일단 수행하면 내후년에 정산해주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들어올 기업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R&D 예산을 마구잡이로 삭감해 놓고선 라온 1차 사업에 참여했던 기업 등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시키고 있다”며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한국만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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