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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Weimar)는 독일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튀링겐주(州)의 작은 도시다. 수도 베를린이나 경제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이런 바이마르를 유명하게 만든 존재는 독일을 넘어 유럽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문인과 예술가, 학자들이다. 소설가이자 정치가였던 괴테, 천재 수학자 가우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리스트, 철학자 니체 등이 바이마르에서 활동한 독일의 대표 지성들이다. 바이마르가 한때 독일의 ‘문화 수도’로 불렸고 지금도 수많은 값진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이유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1919년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선포하며 그 장소로 바이마르를 택한 것은 군사 강국 말고 문화 강국이 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의 토대가 된 바이마르 헌법은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헌법으로 꼽혔다. 국민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과 하원 과반 의원의 지지를 받는 총리가 병존하는 이원집정제 구조다. 다만 하원에 뚜렷한 다수파가 없어 정치적 혼란이 벌어지면 대통령이 마음대로 총리를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심각한 결함이었다. 나치를 이끌던 히틀러가 그 틈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1933년 나치 의석이 하원 과반에 못 미침에도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총리로 기용했다. 이듬해 고령의 대통령이 별세하자 히틀러가 그 자리까지 차지했다.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總統)의 탄생이었다. 히틀러의 집권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종언을 고했다.
동서 냉전이 종식하고 소련(현 러시아) 해체가 임박했던 1991년 8월 독일, 프랑스, 폴란드 세 나라 외교부 장관이 바이마르에 모여 대화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점에서 보듯 독일과 폴란드는 역사적 악연이 깊다. 하지만 2차대전 후 미국, 영국, 프랑스와 동맹이 된 독일은 이제 서방을 지탱하는 핵심 세력으로 거듭났다. 폴란드의 경우 공산주의를 버리고 소련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서방의 일원으로 편입되길 열망했다. 바이마르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선 이같은 폴란드의 국가 목표가 조기에 실현될 수 있도록 독일·프랑스 양국이 적극 지원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회의를 계기로 새롭게 생겨난 것이 독일, 프랑스, 폴란드의 ‘바이마르 삼각동맹’이다.
삼각동맹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긴 했으나 세 나라의 정상회의는 2011년 이후 뜸했다. 정상들을 대신해 외교장관 등이 회동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5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베를린에서 만나 모처럼 3자 정상회의를 가졌다. 주된 의제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공조 방안 모색이나 3국 간 군사협력 확대도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회의 후 숄츠 총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단결이 곧 우리의 힘”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등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이대로 쓰러지면 푸틴의 다음 ‘먹잇감’은 누가 될지 두려워 떨고 있다. 부활한 삼각동맹이 러시아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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